<머리말>

  세계는 우리를 향해 ‘기적’이라고 부른다. 반세기도 안 돼 전쟁의 잿더미 위에 성장의 고층빌딩을 올린 한강의 기적이고,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된 유일한 사례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 화려한 수식어를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앞만 보며 달려왔다. 그래서 성장을 노래하고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됐다. 하지만, 그 기적의 나라에 지방은 없다. 거대한 엔진 하나에 국가의 운명을 걸고 달려온 결과, 우리는 지금 기형적인 풍요 속에 살고 있다. 심장은 터질 듯 뜨겁지만, 팔다리는 차갑게 식어 가는 환자에 비유할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우울한 현실이다.

  기적의 나라에서 ‘지방(地方, local)이 사라지고 있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이 사람과 자본, 꿈과 기회까지 집어삼켰다. 한때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었던 골목에는 적막감이 감돌고, 청년들이 떠난 자리에는 녹슨 농기계와 빈집만이 폐허처럼 남았다. 국토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려 살며 서로를 밀어내고 경쟁하는 동안 나머지 88%의 땅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2023년 기준 118개 지자체가 소멸 위험에 처해 있다. 기적의 크기만큼 성장의 그림자도 짙다.

  기적의 나라에는 ‘지방(脂肪, fat)’도 없다. 생물학적으로 지방은 건강한 신체에 필요한 에너지이자 소중한 자양분이다. 이를 국토에 비유하면, 지방은 국가의 성장과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인구와 자본을 공급하는 댐이자 에너지원이다. 그러나 우리의 국토는 오로지 당장의 성장을 위해 몸속의 마지막 지방까지 태워 버린 영양실조에 빠져 있다. 수도권 일극 성장에 기대어 오로지 효율이라는 단 하나의 잣대로 질주해 온 대가는 매우 혹독하다. 저장고가 텅 빈 생명체는 사멸되고, 무게 중심이 한쪽에 쏠린 거대한 함선은 침몰할 수밖에 없다. 지방이 소모되면 국가도 결국 소멸의 길을 걷게 된다.

  지방의 소멸은 단순히 특정 지역의 몰락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국가라는 유기체의 생존 체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최후의 경고다. 뿌리가 썩어 가는 나무가 푸른 잎을 오래 유지할 수 없듯이 지역이 사라지면 국가의 종말은 예정된 수순이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2023년 12월 대한민국이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David Coleman) 옥스퍼드대 교수는 지금의 저출산 추세가 계속되면 대한민국은 2750년에 소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처럼 지방 소멸은 기적의 성과를 조금 가리는 그늘에 그치지 않고 국가 시스템 전체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

  이 책은 찬란했던 기적의 그림자 속에서 소멸하는 지방을 살리기 위한 해법을 담았다. 그동안 우리가 외면했던 ‘지방’의 존재가 우리 공동체를 지탱하던 최후의 보루라는 사실에 기초해 있다. 그래서 저서의 제목도 『기적의 그늘, 사라지는 지방』으로 정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동안 그 짙은 그늘이 지방 소멸을 낳았으며,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국가의 생존도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살 듯이 지방의 소멸은 곧 국가의 종말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서둘지 않으면 기회를 잃는다. 지방의 발전을 통해 국가의 번영을 이끌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가? 지방분권과 자치 시스템 개편을 통해 모든 지방이 골고루 균형 있게 발전하게 하는 것이다. 수도권에 대해서는 과도한 집중을 억제해 혼잡과 부동산 대란을 방지하고, 비수도권에 대해서는 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을 통해 소멸 위험을 줄여야 한다. 중앙의 일방적 재정 지원이 아니라 지방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자치 역량 강화를 위해 시·도 통합을 추진하고, 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필요한 조세와 규제권을 이양하며, 그리고 선출직의 독선 방지를 위해 주민자치를 강화해야 한다.

  이 책은 그동안 신문 지면을 통해 치열하게 고민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단순히 지방의 소멸을 헐뜯거나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지방의 번영을 통해 대한민국 전체가 발전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지방분권 대전환”에서는 중앙의 시혜적 배려가 아닌 지방 스스로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방자치 30년 동안 이룬 2할 자치의 원인을 진단하고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 대안을 제시했다. 또한 자치 역량만 탓하는 중앙의 논리 뒤에 감춰진 모순을 지적하고, 시도지사를 장관급으로 격상할 것과 실효성이 약한 주민소환제의 문턱을 낮출 것을 제안했다.

  “지방 시스템 개편”에서는 낡은 행정의 옷을 벗고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시스템 개편을 강조했다. 지방분권을 떠받치는 지방 시스템 개편을 위해 지방 주도의 시·도 통합, 특히 정치적 임팩트가 큰 부산경남의 통합을 추진해야 하지만, 수도권 집중을 부추기는 서울 재편과 경기 분도는 최대한 늦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3개의 특별자치도에 대한 행재정 특례를 강화하고, 시·군 통합 추진과 특례시 요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대구경북 행정 통합”에서는 규모의 경제를 넘어 지방 자립을 위한 새로운 거점을 형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저출산과 지방 소멸 극복을 위한 TK 통합의 당위성을 제시하고, TK 숙의공론화의 의미와 성과를 짚어 봤다. 또한 TK 통합 잠정 무산의 근본 원인과 재추진 과제를 진단하고, 절반의 성공을 거둔 TK 통합의 기여 요인을 밝혔다.

  “지역균형발전 추진”에서는 어디서든 균등한 기회를 누릴 수 있고, 서울이 아니어도 행복을 꿈꿀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는 퍼주기식 재정 지원에서 자립 능력을 키우는 쪽으로 균형발전정책의 기본 틀을 바꿔야 하고, 서울의 정치수도와 세종의 행정수도에 더해 세 개의 경제수도를 건설해야 하며, 지역 간 조세 기반 차이를 고려해 재정분권과 재정 형평화를 조화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정 갈등 해법”에서는 지방분권에 의해 초래된 국정 혼란과 갈등을 상생적으로 풀기 위한 대안을 강조했다. 4대강 사업과 동남권 국제공항, 그리고 무상복지 갈등은 정치적 색깔을 빼내 과학적 근거를 중시하고, 고준위 방폐장 갈등과 의대 증원 갈등의 경우 극단적 대결이 아닌 서로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상생 대안을 모색하며, 저출산 문제 경우 출산을 거부하는 젊은 층의 심리와 재정적 지속 가능성의 관점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우선, 장기간 칼럼 연재를 허락해 준 전 서울신문 곽태헌 사장에게 감사한다. 3년에 걸쳐 게재한 서울신문의 칼럼이 저서의 핵심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곽 사장의 기여는 가볍지 않다. 아울러 중앙일보, 조선일보, 한국경제신문, 영남일보, 경북일보, KBS(대구방송과 창원방송) 등에서도 칼럼과 대담의 기회를 줬는데,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표한다. 마지막으로 출판사의 경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저서의 출간을 흔쾌히 허락해 준 윤성사 정재훈 대표께도 깊은 감사를 표한다.

2026년 5월

하혜수

 

<차례>

지방분권 대전환 

  30년의 공든 탑, 2할 자치

  2할 자치의 근본 원인

  지방분권의 임계점은 어딘가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 추진

  자치 역량만 탓할 수 없다

  시도지사를 장관급으로 높여야

  시급한 주민소환제 실효성 확보

 

지방 시스템 개편

  상리공생의 다극 체제 전환

  부산경남 통합의 정치적 임팩트

  서울 재편은 시·도 통합 이후에나

  경기 분도 추진은 순서 오류

  특별자치는 간판보다 내용이 중요

  시·군 통합은 지방 생존의 탈출구

  특례시 지정 요건의 이원화

 

대구경북 행정 통합

  대구경북 행정 통합의 당위성

  TK 통합은 지방 소멸 해소에 기여

  TK 통합 숙의공론화의 의미

  TK 통합 온라인 공론화의 성과

  TK 통합 잠정 무산의 근본 원인

  TK 행정 통합 재추진의 과제

  TK 행정 통합, 절반의 성공

 

지역균형발전 추진 

  지역균형발전의 기본틀 전환

  작은 수도 5개 만들어야

  시급한 세종시 행정수도 완성

  재정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의 조화

  정무직 탕평 인사와 지역균형발전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지방분권 개헌

 

국정 갈등 해법

  국정 갈등의 상생 해결

  정쟁에 내몰린 4대강 사업

  정치 논리에 지배된 동남권 국제공항

  고준위 방폐장은 주민 결정에 맡겨야

  선심성 프레임에 갇힌 무상복지

  의대 증원 갈등과 치킨 게임

  저출산 문제에 대한 발상의 전환

 

<저자 소개>

하혜수(河慧洙)

· 학력: 경상국립대 학사(1985), 서울대 석사(1991), 서울대 박사(1996년)

· 경력: 경기연구원 연구위원(1996.10~2001.3), 버밍엄대 방문 교수(2005.8~2006.7), 경북대학교 교수(2001.4~2026.8),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제17대 원장(2015.4~2017.5)

· 학회 활동: 한국지방자치학회 제20대 회장(2016.2~2017.2), 한국행정학회 부회장(2015.1~2015.12), 한국정책분석평가학회 편집위원장(2010.1~2011.2)

· 정부 자문: 대통령 소속 지역발전위원회 위원(2015~2017), 국무총리 소속 정부업무평가위원회 위원(2014~2017), 대구경북행정통합공론화위원회 공동위원장(2020.9~2021.7), 국무총리 소속 행정협의조정위원회 제11기 위원장(2021.1~2023.1),  고용노동부 소속 고용정책심의회 위원(2023.9~2027.11), 경상북도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2025.10~2027.10)

· 주요 저서: 『협상의 미학』(2017, 공저), 『지방분권 오디세이』(2021), 『지방자치론』(2012, 공저), 『인사행정: 행정 논리와 정치 논리』(2022, 공저)

· 수상: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수석 졸업(1991.2), 한국정부학회 학술상(2003.2), 한국지방자치학회 학술상(2024.2), 대통령 표창(2013.2)

· 기타: 서울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경제신문 등에 칼럼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