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우리에게 내일은 있는가? 우리 사회는 온전히 지속될 수 있는가? 한국 사회는 우리 시민의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보장할 수 있는가? 2026년 우리 삶의 미래 전망은 별로 밝지 않아 보인다. 12·3 비상계엄으로 흐트러진 일상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또한 점점 심각해지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전 지구적 환경 문제, 그리고 상시적 경제위기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회·정치적 문제들은 우리의 일상을 뒤흔든다. 특히 일상에 많은 변화를 예고하는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대체한다든지, 반대로 더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든지 하는 상반된 예측을 낳고 있다. 일자리의 대체든 창출이든 분명한 것은 먹고사는 민생 문제에 대한 불안이 계속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AI의 상용화는 인간공동체에 큰 도전을 제기할 수도 있다. 가진 이들은 개인적인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생각과 판단의 외주화’를 가속하며 자신의 역량에 날개를 달고 갑옷을 입힐 것이다. 탐욕스러운 사익의 추구가 신뢰와 윤리의식의 붕괴로 이어지면 공동체는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AI의 도래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인 문제, 윤리와 책임의 문제, 그리고 공동체의 문제는 세계의 많은 정부가 마주한 고민거리다.

  한국은 지난날 크고 작은 경제적·정치적 소용돌이를 헤쳐 나오는 과정에서 개인, 공동체, 정부가 각각 놀라운 생명력과 성취력을 보여 주었다. US 뉴스 & 월드 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가 2024년 12월 31일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5년 ‘세계 강대국 순위’에서 6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독일에 이은 순위이며 프랑스,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보다 높은 순위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경제적 영향력 83.3점, 수출 경쟁력 89.4점, 군사력 87.8점이라는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사회는 고속 경제성장 이후 정치 민주화, 정보화, 세계화를 성공적으로 이룬 명실공히 글로벌 강국의 지위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룬 것과 같이 찬란한 성과가 앞으로도 지속되리라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마주한 다양한 민생의 어려움, 해체되는 공동체, 만연한 불신과 불안, 점증하는 불만과 불행감, 책임감의 실종 등 다양한 사회적 난제들(wicked problems)이 단지 AI의 등장만으로 갑작스럽게 나타나거나 악화한다고 볼 수 있는가? 커져만 가는 경제적 불평등과 소득 양극화는 우리 공동체가 더 이상 운명을 함께하는 ‘운명공동체’가 아님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너의 운명과 나의 운명은 아무 상관이 없고, 이 세상에 ‘우리’라는 것은 없다. ‘우리’가 없으니 공동체 의식도 없다. 이런 가운데 시민의 살림살이와 공동체의 삶을 효과적으로 살피기 위해 정부의 국정 운영 방식이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전보다 더욱 거세지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제4차 산업혁명과 이에 수반해 등장하는 초연결 사회(hyper-connected society)에서는 개인, 공동체, 정부 등 각 개별 단위의 역량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 경제적 삶의 고충을 줄이면서 각 가정의 살림살이를 안전하게 영위하는 방안은 없는가? 우리 이웃과 공동체가 쇠퇴하지 않으면서 각 시민이 자유롭고 편안한 경제활동을 누릴 수는 없는가? 이 상황에서 정부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러한 문제의식을 배경으로 필자 세 사람은 보통 시민으로서 민주주의 우리 사회의 평균적 상식, 합리적 이성, 그리고 열린 시선을 가지고 여러 문제를 찬찬히 살펴보고자 한다. 이 책에 포함된 36편의 짧은 글은 평소 우리가 아주 익숙해져 있지만 사실 상당히 이상하고 불편한 한국 사회의 여러 숨은 모습을 드러내 준다. 평상시에는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것들을 필자들이 구태여 드러내고 글로 써본 것은 그것을 문제화함으로써 변화의 실마리를 찾길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처 신경 쓰지 않았던 한국 사회의 숨은 모습들을 드러내고 이야기함으로써 시민의 삶을, 우리 공동체를, 대한민국 정부와 정책을 재발견하고 재성찰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드러난 문제들에 대해 구체적인 해결책도 고민해 보는 생산적인 공론의 과정도 시작되기를 바란다.

  총 36편의 글은 ‘이웃 살피기’, ‘살림 살피기’, ‘나라 살피기’의 세 가지 관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이웃 살피기’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오로지 공동체 안에서만 의미가 있고, 지속 가능하며, 더 강화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해 공동체와 관련한 문제들을 다룬다. 구성원 사이의 소통 부재로 야기되는 다양한 공동체의 약화 현상을 다룬다. 개인이 독선적으로 자신의 주장만을 중시하고 소통과 협력을 거부할 때 공동체는 붕괴해서, 이는 결국 개인 자유와 권리의 약화로 이어짐을 지적한다. 자유로운 시민은 상호신뢰와 책임 의식으로 무장한 개인인 동시에 공통의 가치와 문화를 공유하는 사회 공동체의 일원임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요컨대 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공동체의 유지, 그리고 사회의 공동선과 협응하며 추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살림 살피기’에서는 우리 사회 각 구성원의 민생과 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제들을 되짚어 본다. 생활의 여러 문제와 경제활동을 들여다보는 이유는 결국 각 개인이 처해있는 경제적 형편과 여유에 따라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지켜내고 누릴 수 있는 의지와 역량이 상당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가 말 그대로 자유로운 개인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면 이는 편안한 살림살이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빈곤으로부터의 자유, 불평등으로부터의 자유를 확보하지 못한 개인은 결코 정치적 압제로부터의 자유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세 번째 ‘나라 살피기’에서는 권위와 강제력이 동반된 정부의 실효적 개입이 요구되는 사회문제를 중점적으로 살핀다. 이 세상 모든 문제가 정부의 대응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문제들은 반드시 정부가 그 해결을 위해 나서야만 한다. 이 경우 관련 정책과 법은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적 요소가 된다. 민생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회문제를 풀려는 당국의 의지와 역량은 사회 구성원의 갈등을 막고 공동체를 결속시키며 사회통합을 이뤄내는 기초가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이 책의 필자 세 사람은 다 토종 한국인들이지만 1653년 조선에 표류했던 하멜처럼 한국을 잘 모르는 이방인을 자처하고자 한다. 새로운 시각에서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안들을 ‘탐사’하고자 한다. 세 사람 모두 현재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지만 잘난 ‘전문가’의 허울을 벗어던지고자 한다. 그저 평범한 이방인의 시각으로 한국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을 곱씹을 것이다. 세 사람 모두 어떤 강한 이념적 성향도, 특정한 정치적 의견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이성의 눈으로, 상식의 눈으로, 열린 눈으로, 그리고 따뜻한 애정의 눈으로 한국 사회의 현상을 관조하고 탐사하고자 한다. 이성의 눈은 날카롭고 매섭게 불합리와 부조리를 파고든다. 상식의 눈은 평소에 그냥 지나쳤던 한국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어 우리를 당황케 한다. 열린 눈은 ‘우물 안 개구리’에게 우물 밖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애정의 눈은 우리 모두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체의 미래를 고민케 한다.

  우리는 앞으로 이 책을 매년 발간할 예정이다. 매년 한 해를 돌아보며 그 전 년에 화제가 되었던 현안들을 이성과 상식의 관점에서 열린 마음과 애정을 가지고 찬찬히 그리고 꼼꼼하게 탐사해 나갈 것이다. 이 탐사의 여정에 감히 용기를 내어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아무쪼록 우리 세 사람의 『옴니버스 코리아: 현상이 시류가 되고, 시류가 본질이 되는 한국 사회 찰나의 기록들』 탐사기가 우리의 치부와 환부를 드러내 치료와 회복, 변화와 개혁의 긴 여정의 개시를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2026년 2월

저자 일동

 

<차례>

01편 이웃 살피기

01 대한민국에서 나이란 무엇인가 

02 ‘싸가지’와 민주주의 

03 가려서 마셔라 

04 가족이 차라리 원수의 굴레 

05 ‘근로작업반’으로서의 부부 

06 버려지는 동물들 

07 여전히 낯선 토론 

08 여론은 전지전능한가 

09 여전히 위계적인 조직문화 

10 허울뿐인 문·이과 통합 

11 허당 대학 교육 

12 가짜뉴스 어디까지 

 

02편 살림 살피기

01 경조사 스트레스 

02 정부곳간과 민심(民心) 

03 전세라는 관습 

04 부동산 복지 

05 길도 좁은데 

06 애견 유치원보다 못한 대학 

07 생존의 욕구와 번식의 본능 사이 

08 병원 뺑뺑이 

09 어지간해야지 

10 노동자 천국이 될까 

11 노년의 양극화 

12 이제는 죽음을 이야기할 때 

 

03편 나라 살피기

01 왜 사고만 나면 정부를 탓하는가? 대통령 나와! 장관 나와! 

02 추모합니다 

03 반일과 멸공 

04 위인이 적은 나라 

05 전문가 말 좀 듣자 

06 시민 없는 시민운동 

07 진보는 꼭 가난해야 하나 

08 걸핏하면 소환되는 혁신위 

09 혈서, 단식, 그리고 삭발 

10 판사에게는 솜방망이 

11 교사를 구출하라 

12 AI와 통정(通情) 

 

<저자 소개>

김선혁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연구와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스탠퍼드대학교 국제안보협력연구원 연구원, USC 조교수, 하버드대학교 유럽연구원 초빙교수로 활동했고, 고려대학교 국제처장으로 대학의 국제화를 이끌었으며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정책학회 연구부회장,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국민주권분과 분과장 등을 역임하며 학문과 정책 현장을 연결해 왔다.

주요 연구 분야는 민주주의, 시민사회, 사회운동, 비교행정, 정부혁신, 공공외교이며, 저서로는 『자본주의의 미래』, 『한국 민주주의의 새 길』, 『시민정치의 시대』, 『거대전환』, 『한국사회 권력이동』, 『Economic Crisis and Dual Transition in Korea 』, 『The Politics of Democratization in Korea 』 등이 있다.

 

장지호

미국 미주리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하고, 2005년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 행정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연구와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지식출판원 원장, 기획조정처장, 법인 사무처장,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 등의 교내 주요 보직과 원격대학협의회 부회장, 한국장학재단 비상임이사, 서울특별시 책임운영기관 종합평가단 단장,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경영평가위원, 한국정책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서울특별시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윤리경영위원회 위원, 한국연구재단 종합평가심의위원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정부와 기업, 정책과정분석, 제도주의이며, 저서로는 『정부기업관계론: 이코노믹 거버넌스를 찾아서』, 『정책PR론』, 『시민참여와 거버넌스』 등이 있다.

 

한종희

미국 남가주대학교에서 행정학 석사, 클레아몬트대학원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하고, 광운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연구와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행정연구원 정책평가센타 수석연구원을 역임하고, 국립공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를 거쳤으며, 광운대학교 인권센터장으로 활동했고, 현재는 광운대학교 정법대학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박사 학위 논문으로 한국의 노·사·정 관계를 썼고, 이와 관련된 몇 편의 연구성과를 냈으며, 최근에는 주로 한국의 정부개혁, 거버넌스, 국가-사회 관계, 민주주의 등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지속하고 있고, 저서로는 『정부학서설』, 『인사행정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