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지금도 개발도상국의 농촌을 방문하면 보이는 소박하고 단순한 주민들의 삶이 1960년대 한국 사회를 떠올리게 한다. 그 시절 한국은 빠른 변화를 맞이하던 시기로, 개발과 성장의 필요성이 절실했던 때였다. 이후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논쟁은 국가 주도의 산업화를 통한 근대화가 과연 바람직한 것이냐였다.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Claud Lévi-Strauss)는 1930년대 브라질의 토속인 삶을 관찰하며, 서구 문명과 비서구 미개의 이분법적 관점을 넘어서려 했다. 그는 부족 사회의 혼인 관계 유형을 통해 사람들이 하나의 체제 속에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발견하며, 문명과 미개라는 개념이 서구인의 상상 속에서 발명된 것임을 주장했다.

  오늘날 한국은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가 삶의 질 향상과 행복 증진으로 이어졌는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많은 개발도상국은 여전히 가난의 다리를 건너지 못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가난은 단순히 경제적 결핍에서 그치지 않고 빈부 격차, 권력 집중, 환경오염, 서구 문화의 침투 등 다양한 사회적 모순과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더욱 복합적이다.

  202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세모글루(Daron Acemoglu) 등의 학자들은 한국과 같은 나라의 성공이 특정 집단에 과실이 집중되지 않고 사회 전체에 고르게 확산되는 포용적 제도(inclusive institution) 덕분이었다고 강조한다. 포용적 제도는 혁신의 결과물이 특정 계층이나 소수 집단에 갇히지 않고, 모든 시민에게 열린 기회를 제공해 사회의 전반적인 발전을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책에 언급된 인물들을 포함한 수많은 행정가는 한국이 착취적 제도로 빠지지 않도록 견제하며, 포용적 제도를 지키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가 가난의 다리, 산림 황폐화의 다리, 금융 제도 후진의 다리, 과학기술 부족의 다리, 문화적 결핍의 다리를 건너는 데 기여한 인물들을 조명하고자 한다. 한 사회는 수많은 사람으로 구성돼 있으며, 그중 몇몇은 보통 사람들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다리를 건너는 데 비전을 품고 실제로 그것을 이뤄 낸 이들이다. 이들은 단순히 말로만 외치는 지도자가 아니라, 현실을 상전벽해와 같이 변화시킨 행정적 재능을 가진 인물들이다.

  물론 이들만이 한국의 변화를 이끈 유일한 주역은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수십 년간 혁신과 개선을 더해 왔기에 오늘날의 모습이 가능했다. 이 책에 포함되지 못한 분들에 대해 마음에 부담을 느끼며, 향후 그들의 공로를 다룰 기회를 기약하고자 한다. 더불어, 이 책에 언급된 인물들 역시 내용의 일부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는 접근 가능한 자료의 제약과 필자의 주관이 결합된 결과이므로 널리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시간적으로 볼 때, 한국 사회는 발전 전후로 구조적 공통점과 차이점을 공유한다. 그 차이는 제도 발전이라는 변수를 통해 설명될 수 있다. 이 책은 빛나는 행정가들이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고민했던 흔적과 그것이 정책과 제도로 드러난 사례를 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치와 행정이 만나 소용돌이치고 충돌하며 섞이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레비스트로스가 관찰했던 사회적 구조의 특성은 오늘날에도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으며, 이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고 발전할지 상상해 보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내용은 국가리더십센터의 『한국행정을 빛낸 인물들』이란 보고서에서 발전시킨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행정연구소의 지원을 받았다. 학기 말 바쁜 일정 속에서도 이 책의 출판을 기꺼이 맡아 준 윤성사의 정재훈 대표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 책이 우리 사회의 발전 과정과 미래를 고민하는 데 작은 기여가 되기를 바란다.

2025년 1월

임도빈

 

<차례>

제1장 시작하기: 한국의 기적을 이룬 행정인들 

I. 발전행정 속에서 인물 보기

II. 관련 선행 연구들

III. 궁금한 질문

 

제2장 정치와 타협한 폴리페서인가?: 남덕우

I. 들어가며: 경제 발전의 사령탑

II. 개천에서 용 나다: 남덕우의 일생

III. 경제 전환 시기의 정책과 행정

IV. 행정가로서의 남덕우

V. 나오며: 리더의 조건

 

제3장 일반행정가인가 전문행정가인가?: 손수익 

I. 들어가며: 산림 강국을 만든 행정가

II. 개발행정 시대의 행정

III. 산림녹화 정책의 추진 과정

IV. 나오며: 일반행정가의 성공 요인

 

제4장 국내파 혁신행정가: 이어령

I. 들어가며: 선진국 따라잡기

II. 국내파 문학인

III. 문화예술 분야의 창의성

IV. 문화행정의 틀 짜기

V. 나오며: 국내파 전문가의 성공 요인

 

제5장 과학기술이 선진국으로 가는 열쇠다: 정근모 

I. 들어가며: 과학이 한국의 미래다

II. 과학도의 행정 입문하기

III. 원자력에 주목하다

IV. 한국형 원전 개발 과정: 성공과 실패

V. 한국 과학기술 정책과 행정 체제의 형성

VI. 나오며: 폴리페서의 선구자인가?

 

제6장 IMF 금융위기 개혁의 두 얼굴: 이헌재

I. 들어가며: 외환 위기 극복의 주역

II. 독립운동가 가문: 정통관료

III. 관치경제가 초래한 IMF 금융 위기

IV. IMF 구제금융 체제의 극복 과정

V. 이헌재식 외환 위기 극복에 대한 평가

VI. 나오며: 행정가에서 정치가로 변신

 

제7장 한류와 문화예술행정의 관계는?: 정병국

I. 들어가며: 한눈 팔지 않고 문화에 정진한 행정가

II. 인물 자료 분석방법론

III. 정치 입문과 문화 충격: 성장 과정

Ⅳ. 문화행정에 손을 대다: 베니스 비엔날레

Ⅴ. 정치개혁과 문화예술

Ⅵ. 언론 인터뷰 내용을 통한 활동 분석

Ⅶ. 혁신형 문화부 장관

Ⅷ. 문화행정가의 활동은 계속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Ⅸ. 나오며: 그는 전문행정가였는가?

 

제8장 지루한 줄다리기, 한미 FTA 협상: 김종훈과 김현종 

I. 들어가며: 끈질긴 협상 끝에 얻은 행정의 승리

II. 경제 대국과의 협상 시작

III. 기나긴 협상 여정을 지나다

Ⅳ. FTA 협상의 결과, 그 이후

Ⅴ. 나오며: 행정인으로서의 협상가

 

제9장 마무리하기: 정치성인가 전문성인가? 

I. 대통령 리더십과 발전행정

II. ‘행정적 전문성’이다

 

<저자 소개>

임도빈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이며, 한국행정학회 회장,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원장을 역임했다. 정부경쟁력 이론을 정립하고, 행정이 국가공동체를 위해 어떤 담당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연구에 천착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인간-시간-공간이라는 3간(間) 모델에서 사람이 중심이 돼 더 좋은 한국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 인적 자본이라는 측면에서 공공 부문의 역할에 관심을 갖고 있다. 한국정책학회, 한국행정학회 그리고 서울대학교에서 각각 학술상을 수여 받았다. 40여 권의 저서와 주요 국내외 학술지에 2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주요 저서로는 국가와 좋은 행정, 행정학, 인사행정론, 한국행정조직론, 비교행정학, The Two Sides of Korean Administrative Culture(2019), The Experience of Democracy and Bureaucracy in South Korea(201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