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영국은 행정학이나 비교정책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국가이다. 영국은 자유주의 이념의 발상지로서 19세기 후반기까지 시장의 우월성과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국가였으나, 20세기 전반을 거치면서 어느 국가보다 먼저 시장과 사회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강화하고 복지국가로 나아감으로써 다른 국가들의 전범이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에는 다시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복지국가의 재편을 모색하는 거버넌스 체제의 개혁을 시도함으로써 또 한 번 다른 국가들의 벤치마크 대상이 되었다.

  우리의 경우에도 거버넌스 체제와 복지국가의 변동과 관련해서 영국의 경험은 여타 서구 국가들보다 유익한 시사점을 제공해 줄 수 있다. 북구권 국가들은 거버넌스 체제와 복지국가를 지탱하는 이념(사회민주주의) 측면에서, 미국을 비롯한 앵글로색슨 국가들 역시 이념(자유주의) 측면에서, 그리고 유럽대륙 국가들은 종교(캐톨릭) 측면에서 한국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영국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유주의와 국가개입주의(보편주의 지향) 간의 경쟁과 교차가 반복했던 역사적 경험을 보였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사회는 이념의 변화와 병행해서 공동체의 범위가 국가 수준으로 확장되었다가 다시 지역사회 수준으로 축소되는 변화를 보였다. 20세기 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거버넌스 체제 변혁이 진행 중이고, 최근 들어서는 보편주의 지향의 국가개입주의와 자유주의 이념 간의 경합이 확대되고 있으나, 한국전쟁 후 공동체의 범위가 매우 제한되어 있는 한국 사회는 영국의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기대를 반영하여 그동안 비교행정, 비교정부, 그리고 비교사회정책 분야에서 영국의 행정개혁, 거버넌스 체제, 복지정책과 복지국가 등에 관한 다수의 연구 성과가 발표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1980년대 이후의 영국 정부들에서 추진되었던 거버넌스 체제의 변동 모색에 대해 포괄적으로 검토한 연구는 제한된 상태이다. 이 책은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려는 시도이며, 그동안 저자가 작성했던 영국의 거버넌스 체제 변동에 관한 원고들을 현재 상황에 맞게 수정 및 업데이트하고, 누락된 부분들에 대해서 새로 원고를 작성하여 보완하는 방식으로 작성되었다.

  이 책에서 거버넌스 체제(governance system)는 공공 및 민간부문의 다양한 행위자(agents)와 기관(agencies) 간의 관계 및 그들의 행동에 질서와 균형을 부여하는 제도적 틀을 말하며, 통치구조(governing structure) 또는 조정기제(coordinating mechanism) 등의 개념으로 불리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원형적인(prototypical) 거버넌스 체제에는 계층제(hierarchies), 시장(markets), 네트워크(networks)의 세 가지가 있다. ‘계층제’는 정부의 공식적 법규나 행정 명령 등을 통해서, ‘시장’은 경쟁(competition) 기제를 활용해서, 그리고 ‘네트워크’는 신뢰와 파트너십에 토대를 두고 통치와 조정이 이루어지는 거버넌스 체제를 말한다. 이 연구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현실세계에서 거버넌스 체제는 원형의 형태가 아니라 혼합형의 형태로 운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본 연구는 영국 복지국가의 전개와 정부개혁의 추진 과정에서 이 거버넌스 체제가 어떻게 변화되었고, 그 변화의 동인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제1부는 19세기 말에서 21세기에 이르는 영국의 정치와 행정, 그리고 거버넌스 체제의 변동에 대한 통시적인 논의와 개괄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먼저 제1장(영국 복지국가의 발전과 변화: 정부개입 형태의 변화와 그 원인)은 영국 복지국가의 전개와 그에 따른 거버넌스 체제의 변동 및 그 원인에 대한 일반화를 시도한다. 여기서 영국 복지국가와 거버넌스 체제 변동의 패턴이 제시되고, 변동의 주된 설명요인은 ‘외적 정책 환경의 변화’와 ‘정책 아이디어의 힘’이라는 점이 주장된다. 다음으로 제2장(영국의 정치와 거버넌스 체제의 변동)은 영국의 정치와 거버넌스 체제를 지칭하는 전통적인 관점인 웨스트민스터 모델의 내용을 서술한 후 1980년대 이후 점차 다층적 거버넌스 모델이 웨스트민스터 모델을 대체해가고 있는 현황에 대해 살펴본다.

  제2부는 1980년대 이후 영국 정부별 행정 및 정책의 개혁과 거버넌스 체제의 변동에 대해 논의한다. 제3장(Thatcher/Major 정부[1979-1997년] 행정개혁의 정치적 의도와 효과)은 Thatcher와 Major의 보수당 정부에서 시도되었던 행정개혁과 거버넌스 체제 개혁이 행정통제 강화를 통한 의회주권의 재정립을 목적으로 했으나, 행정개혁의 의도하지 않았던 효과로 인해 그러한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을 규명하였다. 제4장(보수당[1979-1997년], 노동당[1997-2010년] 정부의 행정개혁과 계층제 기제의 의의)은 1980년대 이후 보수당 정부와 노동당 정부가 ‘계층제’ 중심의 거버넌스 체제를 각각 ‘시장’과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하는 거버넌스 체제로 변동하고자 하였고 나름의 성과도 거두었지만, 계층제 기제가 보수당의 신공공관리 행정개혁과 노동당의 뉴 거버넌스 행정개혁의 시대를 관통해서 건재했음을 보임으로써 계층제 기제가 지니는 의의를 제기하고자 하였다.

  제5장(Blair/Brown 정부[1997-2010년]의 통합적 정책형성·전달체계 모색: 청소년복지정책)과 제6장 (Blair/Brown 정부[1997-2010년]의 정책체제 개혁: 중소기업지원정책)은 ‘신노동당’ 정부가 ‘네트워크’ 기제를 활용해서 ‘연계형 정부(joined-up government)’를 모색했던 노력을 청소년복지정책과 중소기업지원정책의 두 사례를 통해서 살펴보았다. 이러한 노력은 Cameron 정부가 들어선 후 변화를 겪었지만, 공공/민간부문의 여러 기관 간 협업을 시도함에 있어 여전히 교훈을 주는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제7장(Cameron 정부[2010-2017년]의 거버넌스 체제 변동)은 보수당의 Cameron이 ‘큰 사회(Big Society)’라는 ‘새로운’ 이념과 지역사회(community) 중심의 시장/네트워크 혼합 거버넌스 체제를 제시함으로써 중도 성향 유권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집권할 수 있었으나 세계 경제위기(the Great Recession)라는 정책 환경으로 인해 당초의 정책 프로그램을 재해석하여 신우파 이념 및 거버넌스 체제와 유사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음을 보이고자 하였다.

  이상 영국 거버넌스 체제의 변동에 대한 검토를 통해 우리는 정치 지도자와 그들을 지원하는 이론가들이 개발하고 구체화하는 이념과 정책 아이디어가 한 국가의 거버넌스 체제를 변동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니지만, 그러한 이념과 정책 아이디어는 해당 정부가 처해 있는 정책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정치 지도자와 이론가들이 제시했던 이념과 정책 아이디어는 결코 순수하고 완결된 형태로 현실 정치와 행정에 적용될 수 없고, 다른 거버넌스 체제 요소와 혼합된 형태로 활용될 수밖에 없으며 예상하지 못했던 요인의 영향을 받게 됨을 발견하였다. 나아가 거버넌스 체제는 한 정부에 의해 완결될 수 없고, 지속적으로 변화를 겪게 됨을 알 수 있었다. 영국 거버넌스 체제의 변동에 대한 검토를 통해서 발견된 이러한 현상들은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와 이론가들이 현실에 부합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인 거버넌스 체제를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전개함에 있어 유익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의 참고문헌 정리에 도움을 준 명지대학교 행정학과의 최아린, 채민형, 오윤영 학생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또한 책의 시장성을 고려하지 않고 선뜻 출판을 결정하신 윤성사의 정재훈 사장님과 출간에 애써 주신 직원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지난 몇 년 사이 빙모님과 부친께서 별세하시고, 이제 모친과 빙부님만이 생존해 계신다. 좋지 않은 건강 상태에도 불구하고 늘 저자의 학업에 관심을 보여주시는 두 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언제나 그렇듯 저자의 옆을 지켜주는 아내 오현숙과 지난 8월에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학자의 길에 들어선 아들 영하에게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21년 9월

명지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주재현

 

<차례>

제1부 영국의 정치와 행정, 그리고 거버넌스 체제의 변동· ·······················11

제1장 영국 복지국가의 발전과 변화: 정부개입 형태의 변화와 그 원인· ···················13

Ⅰ. 서론 / 13

Ⅱ. 이론적 논의 / 14

Ⅲ. 영국 복지정책 발전과 변동의 동인: 외적 환경의 변화와 정책 아이디어의 힘 / 21

Ⅳ. 결론 / 28

 

제2장 영국의 정치와 거버넌스 체제의 변동···································33

Ⅰ. 서론 / 33

Ⅱ. 웨스트민스터 모델 / 34

Ⅲ. 웨스트민스터 모델에 대한 도전 / 42

Ⅳ. 대안적 접근법의 대두: 다층적 거버넌스 모델 / 64

Ⅴ. 결론: 우리나라 거버넌스 체제에 대한 시사점 / 69

 

제2부 1980년대 이후 영국 정부별 행정 및 정책의 개혁과 거버넌스 체제의 변동· ······79

제3장 Thatcher/Major 정부(1979-1997년) 행정개혁의 정치적 의도와 효과· ················81

Ⅰ. 서론 / 81

Ⅱ. 영국 보수당 정부 행정개혁의 정향, 전개, 결과 / 83

Ⅲ. 영국 보수당 정부 행정개혁 결과에 대한 분석 / 93

Ⅳ. 결론: 영국 보수당 정부(1979-1997년) 행정개혁의 시사점 / 99

 

제4장 보수당(1979-1997년), 노동당(1997-2010년) 정부의 행정개혁과 계층제 기제의 의의·······105

Ⅰ. 서론 / 105

Ⅱ. 조정기제와 행정개혁 모형에 관한 이론적 논의 / 108

Ⅲ. 영국 행정개혁 사례 분석 / 113

Ⅳ. 조정기제 혼합 현상에 대한 토론 / 123

Ⅴ. 결론 / 126

 

제5장 Blair/Brown 정부(1997-2010년)의 통합적 정책형성·전달체계 모색: 청소년복지정책· ····133

Ⅰ. 서론 / 133

Ⅱ. 영국 사례연구의 의의 및 세부 분석차원의 제시 / 135

Ⅲ. 영국 청소년복지정책의 전통과 노동당 정부 정책변화 분석 / 137

Ⅳ. 결론: 영국 청소년복지 정책변화의 시사점 / 149

 

제6장 Blair/Brown정부(1997-2010년)의 정책체제 개혁: 중소기업지원정책· ···············155

Ⅰ. 서론 / 155

Ⅱ. 노동당 정부의 중소기업지원 정책체제 / 156

Ⅲ. 중소기업지원체제의 성립근거 및 보완 노력 / 163

Ⅳ. 결론: 영국 중소기업 지원체제 개혁의 시사점 / 166

 

제7장 Cameron 정부(2010-2016년)의 거버넌스 체제 변동··························169

Ⅰ. 영국 정치의 변동과 ‘큰 사회론’의 등장 / 170

Ⅱ. ‘큰 사회론’ 정책화의 방향성 / 172

Ⅲ. ‘큰 사회론’ 정책화의 주요 내용과 실제 / 175

Ⅳ. 결어 / 185

 

<저자 소개>

주재현(朱宰賢)

1997년 영국 런던정경대학(LSE)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논문제목: Policy Dynamics in South Korea: State Responses to Low Wage Levels and Compensation for Pollutions Victims, 1961-1988), 한국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과 세종대학교 교수를 거쳐 2003년부터 명지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주요 관심분야는 정책변동, 사회복지정책, 관료제 통제 등이다. 다수의 중앙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공공기관의 자문 및 평가위원으로 활동하였고, 한국정책학회와 한국행정학회 등 여러 학회의 임원과 편집위원을 역임하였다. 1997년 LSE에서 우수학위논문상(William Robson Memorial Prize)을 받았고, 2010년 명지대학교 학술상, 2020년 한국정책학회 학술상(우수논문상)을 수상하였다. 국내외의 저명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고, 단독 및 공동으로 여러 저서를 출간하였다. 최근의 주요 논문 및 저서로는 “집단-격자 문화이론과 정책형성: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사례분석” (「한국정책학회보」, 2019), “장애인 고용문제에 대한 정부개입의 변화과정 분석: 영국 렘플로이 사례를 중심으로”(「장애와 고용」, 2020), 「행정의 책임과 통제」(법문사, 2020) 등이 있다(jhjoo61@mju.ac.kr).